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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 계속되는 작전, 또 작전 ]--
방석에 돌아와서 한 열흘 쯤 있으니 또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 아~! 월남생활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와 마찬가지로 작전 출동을 했다. 이번에는 첫 작전 때보다도 상당히 세련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역시 헬기로 어느 고지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고 다음날부터 수색에 들어갔다.
수색하던 중 숲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가 발견되었다. 담배꽁초 옆에는 금방 배설한 것 같은 대변이 발견되었다. 소대장은 즉시 88무전기(소대내의 교신에 사용되는 것으로 송수신기가 분리되어 수신기는 분대장들이
철모에 꼽고 송신기는 방탄조끼 가슴주머니에 꽂고 다녔다.)로 전 소대에 비상을 걸었다. 적이 우리의 수색을 뒤늦게 눈치를 채고 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큰일을 보다가 다급해 튄 것이 확실했다. 적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병력과 화기가 월등해서 공격을 해오지는 못하지만, 어디선가 숨어서 우리를 살펴보고 있을 것이었다.
갑자기 소대에 긴박감이 돌고 모두들 자세를 낮추고 M16의 자물쇠를 풀고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그 주변 수색에 들어갔다. 얼마 후 울창한 수풀 나무 밑둥에서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는 동굴 입구가 발견되었다. 소대는 동굴입구에서 멀리까지 넓게 분산 배치되어 경계에 들어갔고, 소대장은 동굴 입구 속으로 스모크탄을 몇 발 까 넣고 주변을 살피도록 지시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입구에서 경사진 위쪽으로 20여 미터쯤 떨어진 숲속에서 스모크탄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것도 두 군데서.. 연기가 나오는 두 곳에 병력을 배치해 놓고 연기가 어느정도 가신 후 1개 분대를 동굴 안으로 진입시켰다.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이상 없다는 보고를 받자 이번에는 소대장이 직접 들어가 보겠다고 했다. 통신병인 나도 당연히 소대장을 따라 붙었다. 동굴은 입구에서는 바로 밑으로 내려가다가 곧바로 수평으로 꺽여 나갔다. 스모크탄 연기 때문에 매캐하고 천정이 너무 낮아 일어 선채로 걸어갈 수 없어 숙여야 했고, 폭도 아주 좁아 둘이 비켜갈 수도 없었다. 불과 몇 미터 가지 않아 캄캄해지고 빛의 반사가 안되어 손전등은 맥을 못추고 주위를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 첨병 분대가 앞서 지나갔어도 엄청난 긴장 속에 공포가 엄습해 왔다. 내 발자국소리에 내가 흠칫 놀라고, 철모가 천정이나 벽에 부딪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금 더 들어가니 좀 넓어졌고 그곳에는 절강고구마(고구마를 얇게 썰어서 말린 것)가 담겨있는 자루가 몇 개 발견되었다. 적들의 은거지가 틀림없었다. 스모크탄의 연기와 동굴 특유의 흙냄새가 뒤섞여 숨쉬기도 괴로웠지만 동굴의
무서운 공포 분위기에 눌려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속에서 적의 수류탄이 날아온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조금더 진행하니 "Y"자로 갈라졌다. 소대본부 병력은 거기서 되돌아 나왔다. 돌아 나오는 그 짧은 시간에도 적의 수류탄이 뒤에서 막 굴러 오는 것 같은 아찔한 공포, 바로 옆에서 따다당~! 하고 당장이라도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공포는 5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상상하기만 하면 몸이 한번 부르르~ 떨린다. 동굴을 무사히 빠져나온 뒤 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렸는지... 휴~~~ 동굴 밖으로 나온 것을 확인한 소대장의 지시로 각 입구마다 수류탄을 몇 발씩 동시에 까 넣어 뭉개 버렸다. 다시 주변 수색을 계속하던 중, 갑자기 첨병분대 쪽에서 요란한 총성이 숲을 뒤흔들었다. 총성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첨병분대가 측면 숲에서 수색을 피해 달아나는 적 두 명을 발견하고 일제 사격을 했으나 놓쳤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나중에 그 분대원한테 들었는데 적과의 거리는 불과 20 미터, 분대 전원이 무차별 사격을 가했지만 적들은 정글 숲속으로 도망쳐 버렸다고 했다. 전과를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쉬운 일이었다. 이것이 나의 VC동굴 수색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되고 말았다. 그뒤로 다시는 동굴 수색의 기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다음 언젠가 매우 큰 작전 때 대대 작전 병력이 이동 중, 수상한 촌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우리 중대에게 마을을 정밀 수색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즉시 각 소대 병력을 마을 외곽에 배치하고 본부중대 병력은 모든
마을 주민들을 쫒아내어 마을 앞 넓은 곳에 집결시켰다. 마치 가축을 몰 듯 했고 그들은 영문을 모른 채 겁먹은 눈빛과 표정으로 우리의 총뿌리에 이리저리 떼밀려 집결을 당했다. 대부분 노인과 여자, 어린아이들 뿐 수상한 젊은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벌써 근처 숲속으로 튀었을 것이었다. 모두 모으니 약 20여명, 빙 둘러 우리 병력이 실탄을 장전한 채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사이 신분증 검사가 진행되었다. 신분증이 없으면 따로 분류되었다. 잠시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된다. 언제 무엇이 날아올지 모른다. 주민들 중에 VC, NVA가 없으란 법 없기 때문이다. 이러는 동안 다른 병력들은 가가호호 집을 수색한다. 집 자체보다도 집안에 출입구가 있는 지하땅굴 수색이 무섭다. 정말 무섭다.
이때, 약간은 멀리에서 매우 큰 폭발음이 울렸다.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어딜까? 5중대? 7중대? 얼마 후 5중대의 작전 지역 방향에서 메드백 헬기가 내리고 뜨는 것이 멀리 보였다. 누군가가 당했겠지.. 그것은 105mm 부비트랩에
5중대에서 당한 것이라고 전해졌다. 만약 저 부비트랩이 우리 중대에서 터졌다면....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마을 수색은 별 탈 없이 끝나고 증명서가 없는 월남인들은 곧이어 날아온 헬기로 후송되었고 우리는 다음 작전을 위하여 다음 위치로 이동했다.
월남사람들은 자식 셋을 키워 하나는 월맹군으로 하나는 월남군으로 보내고 나머지 하나는 집에서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이 전쟁에서 어느 쪽이 이겨도 무사하기 위함이리라.... 또, 오랜 전쟁에 지쳐서 어느 쪽이 이기든 지든 관심이 없고 빨리만 끝나면 좋겠다고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렇게 거듭되는 작전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월남고참이 되어가는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나도 드디어 소대통신병 근무를 마치고 중대통신반으로 올라갔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겠지.... 우리 6중대 바로 남동쪽 아래에 있는 마을에 사는 잘생기고 영어가 능통한 '안' 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월남인이 있었는데 중대에서 그를 정보원으로 활용하면서 가끔 작전 시 필요할 때는 데리고 나갔다. 중대장이 영어가 능통했기 때문에 중대장과 직접 대화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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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 부상당한 중대장 ]-- 2071년 2월 6일, 황룡12-22.소부대작전의 일환으로 중대 방석에서 북서 방향으로 얼마 멀지 않은 VC마을이라는 지역으로 중대작전을 나갔다. 이번 작전에는 정보원 안과 중대지역 부면장(안내 첩자)이 동행했다. 이동 시 작전하사가 앞장을 서고 그뒤에 안, 부면장, 중대장, 통신병(219기 윤종태), 중대장 전령, 그뒤에 중대장 전령, 중대장 전령, 통신병(나)의 순서로 이동하던 중,
"쾅~!" 하는 폭발과 함께 모두가 순간적으로 엎드렸다. 비명소리에 뒤이어 쏟아지는 흙, 돌가루... 이어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안의 한쪽 발목이 떨어져 나갔고 안내하던 부면장의 왼쪽눈알이 빠져 탄띠에 매달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안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중대장도 왼팔과 양쪽 허벅지를 심하게 다쳤다. 바로 중대장 뒤에 있던 윤 수병과 중대장의 왼쪽 뒷쪽에 있던 나는 구사일생으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은 안이 부비트랩을 밟았기 때문이었다. 아비규환 속에 안과 부면장은 미군 앵글리코맨의 연락으로 잠시 후 날아온 메드백 헬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러나 중대장은 후송을 마다하고 위생병의 치료를 받으며 계속 중대를 지휘했다. 정말 장한 모습이었다. 왼쪽 시진은 실전 중 나도 모르게 찍힌 사진 4장 중의 하나, 임종린 중대장이 부상 당한 채로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 그날 저녁 야영 때 무전기의 배터리를 교환하려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터리 케이스가 잘 빠지지 않아 살펴보니 이런?? 배터리케이스와 몸체가 겹치는 부분에 파편에 맞은 흔적이 있고 그 때문에 케이스가 잘 안 빠지는 것을 그제서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또 윤 수병이 무릎이 좀 이상하다고 오늘 사고 때 잘못 업드려서 그런가보다고 했다. 그런데 30년도 더 지난 2003-03-01 윤 수병과 재회를 했었는데 아무 증상이 없던 무릎이 30년도 더 지난 얼마 전에 점점 부어올라 뒤늦게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X-Ray사진에 작은 모래알 같은 흰점 3개가 보여 수술로 제거했는데 그것은 잘게 부숴진 돌가루였다고 했다. 아마도 폭발시 모래알들이 날아들어 박혀있던 것이리라.. 그때 맞은 것이 좁쌀 만 한 모래알이 아니라 굵직한 돌이 었다면?? 그날 밤 중대장 텐트에서는 신음소리가 밤새 계속되었다. 중대장 전령에 의하면 상처가 워낙 깊어 진통제로도 잘 안된다며 그렇다고 마약인 몰핀을 계속해서 쓸 수도 없어 고민이라 했다. 조금만 다쳐도 그걸 핑계로 어떻게 해서든지 후송되어 귀국하려고 애쓰는데 후송을 마다한 중대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존경스러움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중대장은 심창섭 위생하사의 등에 업혀 다니기도 하면서 중대를 지휘하였고 그날 오후 모두 무사히 중대 방석으로 되돌아 왔다. 기억이 확실치 않으나 이때의 중대장이 임종린 대위가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 글을 읽은 여러 선,후임들이 바로 이 존경스러운 중대장이 먼 뒷날 제20대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역시 위대한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최근에(2003년 2월말) 이 옛 중대장님과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가 있었는데 중대장님은 그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계셨다. 여기에 중대장님의 이메일 내용 중 위의 사건에 관한 부분만 그대로 옮겨본다. 1. 내가 부상당한 부위는 왼쪽팔.다리와 오른쪽 다리였으며 그당시 중대본부는 3소대 다음이였는데 작전하사.안. 부면장(안내첩자). 중대장.통신병. 순 이였으며 안은 다리절단, 부면장은 왼쪽눈이 날라갔지요(부비추럽폭팔로). 부상당한 안과 부면장을 헬리콥타로 후송하고 야간 방어작전에 들어 갔는데 진통제가 없어 아스피린을 한 주먹 먹고 밤을 새웠지요. 작전이 끝날때까지 위생하사(심창섭) 등에 업혀 중대를 지휘하며 그다음날(2월7일) 중대 방석에 돌아왔지요.. 곧 바로 여단의무중대로 가서 응급 치료를 받았지요. 내가 중대를 떠난날: 1971.2.11 여단본부로 가서 수술을 완전히 받고 휴식후 여단장께서 귀국을 시키지 않고 여단 인사과장으로 발령해서 1년이상 근무타가 청룡부대 맨 마지막 진과 같이 다낭 부두에서 배를 타고 귀국 했지요... 2. 안이 부상 당한 날: 1971.2.6, 작전명: 황룡12-22.소부대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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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 굶어 죽을 뻔 ]-- 이렇게 계속해서 작전이 반복되었다. 어떤 때는 중대작전, 어떤 때는 대대작전 또 어떤 때는 여단작전....
작전 때는 부대 이동 중에 늪이나 낮은 강을 건너야 할 때가 있다. 특히 늪보다도 탁 트인 강을 건널 때는 정말 아찔하다. 완전히 우리의 모습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우선 병력 절반의 엄호 하에 절반이 건너고 나면 먼저 건넌
병력의 엄호 하에 나머지 병력이 건넌다. 어떤 때는 물이 허리 이상으로 찰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소총과 특히 무전기, 배터리는 물에 적실 수 없으므로 가슴에 안고 가거나 머리 위로 쳐들고 가야만 한다. 무전기의 송수화기는
신품일 때는 방수가 곧잘 되지만 조금 지나면 송화스위치의 고무가 찢겨져 방수가 안된다. 이럴 때 비를 맞거나 물에 빠뜨리기라도 하면 삐~~ 하는 아주 강력한 음이 계속해서 송신되고 그 주파수망은 마비되고 만다. 이럴 때는
얼른 무전기를 끄고 송수화기를 빼서 힘껏 흔들어 털고 말리는 수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진땀을 흘리며 겨우 통신이 재개되면 정신없이 쏟아지는 XXX... ㅠ.ㅠ 통신병의 비애다.. 그래서 우기철 중에는 송수화기를 비닐로 뒤집어
씌우고 고무줄로 묶어 사용한다. 매복 나갈 때도 역시 그렇게 한다.
가끔은 늪지대나 강가에서 작전 중에 해병대 수색대의 보트를 만날 때가 있다. 수색대는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커다란 선풍기같이 생긴 것이 보트 후미에서 강력하게 돌고 있었다. 배 밑의 스크류 방식은 수초에 감겨 사용할 수 없어 선풍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보기와 달리 엄청나게 빠른 속력으로 늪, 강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은 참으로 근사했다.
작전 중에는 이틀에 한번씩 헬기로 각종 탄약, 식량, 식수, 우편물, 배터리 등 모든 보급품이 공급된다. 식수는 쓰고 버린 155mm 곡사포의 장약통을 사용한다. 고무박킹이 있어 함부로 취급을 해도 물이 샐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우기철이 한창이던 어느 작전 때의 일이다. 작전 중에 태풍이 다가와서 보급 헬기가 뜨지 못하게 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이면 해소되겠지 하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는데 무전으로 날아오는 상부로부터의 소식은 장난이 아니었다. 현재로서는 보급재개가 언제 가능할 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과 절대적으로 식량을 아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헬기가 뜨고 내리는데 비의 양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는 바람이라는 것이었다. 해발 약 1,000미터의 고지에 있던 우리중대는 식량비상이 걸렸다. 주간의 적 수색도 중지하고 진지 방어만 하며 날이 좋아지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날씨는 절망적이었다. 쏟아지는 비에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었다. 중대장은 하루에 한 끼로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중대에 식량은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억수같은 비 때문에 물은 걱정이 없었다. M16 탄통을 바닥에 놓고 판쵸우의를 둘이 잡고 벌리면 금방 받아 졌다. 받은 빗물에 정수약 두 알만 넣으면 냄새는 고약해도 해결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식량.... 드디어 식량이 완전히 바닥날 무렵 반가운 지시가 중대로 하달되었다. 헬기는 여전히 이륙이 불가하여 차량으로 식량을 싣고 갈 테니 차량 이동이 가능한 지점까지 내려와 식량을 수령하라는 것이었다. 중대는 애써 구축한 진지를 모두 걷고 하산 길에 나섰다. 굶주림까지는 아니지만 배고픔에 악천후까지 겹쳐 정말 힘든 이동이었다. 거의 바닥까지 내려갔을 무렵, 아군 경계병력과 마주쳤다. 식량 보급부대의 경계병력 이었다. C-레이션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곳까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환호를 하며 달려가 차위에서 던져주는 C-레이션을 받아 닥치는 대로 까먹었다.^^ 실컷 배를 채운 우리는 식량을 지급받아 다시 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왠일인지 긴급철수명령을 받고 얼마 후 날아온 헬기로 중대 방석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적이 빤히 살피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다시 산위로, 그것도 걸어서 올라간다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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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줄기 눈물....
중대 통신반에는 219기 부산 본토박이 윤종태 수병이 있었다. 자상하고 구수한 부산 사투리에 몰라도 아는 듯, 알아도 모르는 듯 구구절절 넘어가는 말솜씨는 일품이었는데,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에 부산에서 그루비원스
라는 4인조 기타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고 했다. 유난히 새까만 피부에 정다운 부산 사투리가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내가 소대 근무를 마치고 중대로 올라와서는 나와 무척 가깝게 지냈다. 나는 돌팔이지만 기타를 아주 약간 칠 줄 알았었는데,
윤 수병과 나는 나뭇가지를 꺾어 드럼을 치는 스틱을 만들고 드럼 대신으로는 C-레이션 박스를 이용했고, B-레이션 깡통, 탄통, 105mm 포통까지 동원하여 드럼 셋트를 만들어 그걸 두둘겼는데 윤 수병의 실력은 가히 일품이었다.
윤 수병은 특히 벤쳐스 악단의 와이프아웃(Wipeout)의 중간 부분의 드럼 애들립 부분을 즐겨 두들겼다.
윤 수병 덕분에 음악 연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그것이 내가 서투른 기타를 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둘이 열심히 드럼과 기타를 칠 무렵 한국으로부터 날아오는 전파속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나훈아의 두줄기 눈물이었다. 윤 수병의 타고난 음악 소질 덕분으로 금방 터득하여 우리는 목이 터져라 두줄기 눈물을 불렀다. 드럼을 치면서, 기타를 치면서.... 나중에 이 두줄기 눈물은 노래방에서 나의 18번지 중 하나가 되었다. 좀 더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윤 수병은 1971년 7월에 귀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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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기지 --[ 부상당한 소대장 ]--
중대에서 서쪽 산악지역으로 수 Km 떨어진 175고지(전초기지라고 불렀다)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이 철수하는 바람에 우리 2대대에서 병력을 차출하여 그 고지를 지켜야 했는데 우리 6중대에서 소대장과 통신병을 포함 가장 많은
병력이 차출되었다. 소대장은 악명높은 1소대장, 통신병은 225기 최철식 수병이 가게 되었는데 최 수병은 나보다 1기 선임이지만 월남에 늦게 왔기 때문에 작전배치 서열에 의하여 정해진 것이었다. 그곳은 제법 산악지대 깊숙이
들어간 곳이라 적의 출몰이 잦은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중대와의 연락은 오로지 PRC-25 무전기 한 대와 예비무전기 한 대 뿐이었다.
그러던 중 한 달이나 지났을까, 전초기지의 소대장이 중상을 입어 메드백 후송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원인은 소대장 뒤쪽에서 폭발물이 터져서 등 전체에 심한 파편상을 입었다고 했다. 자세한 원인은 알 수 없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알려왔다. 고지 안에서 당한 걸로 보아 아마도 아군이 설치해 놓은 지뢰의 인계철선을 건드린 걸로 생각된다. 소대에서는 포악하게 굴더니 잘됐다고 아주 좋아했다.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니 치료 후 귀국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가 와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새로운 소대장은 오지 않고 그 소대장이 다시 돌아온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소대원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소대장은 중대로 돌아왔고 그 후 더욱 포악한 소대장으로 온 중대에 명성을 떨쳤다. 우리 통신반도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나중에 시골 고향에 가서 박삼례 수병한테 그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이 전초기지는 몇 달 후에 폐쇄되고 모두 철수하였다. 이 1소대장은 우리 통신반의 225기 박삼례 수병과 시골 ㅂ ㅇ 친구였는데 시골서 헤어진 후 처음으로 월남에서 다시 만난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반가운 척 하더니 곧 안면 몰수하고 아주 포악했다. 나중에는 박 수병이 저 새끼, 나중에 고향에 내려오면 때려 죽일꺼야~! 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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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꾸러기~@.@~....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잘 잔다. 한번 잠이 들면 아주 깊이 든다. 옆에서 왼 만큼 시끄러워도 개의치 않고 잘 잔다. 월남에서 내가 기거했던 통신 제2벙커는 중대내부에서 보면 반지하형이고 그 옆에는 월남
PF의 105mm 곡사포 진지 두 문 중의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처음에 와서는 이 105mm 포사격 소리에 깜짝 깜짝 놀랬지만 조금 지나자 그것도 만성이 되어 버렸다.
포 한 발 쏠 때마다 벙커가 털썩~! 한다. 그때마다 벙커 안에서는 천장에서 사낭에서 새 나오는 흙가루가 떨어져 내린다. 포를 수십 발 쏠 때면 그 내린 먼지는 상당하다. 얼굴로, 코로, 입으로..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잘 잤다. 타고 난 체질인 것을.. 이것이 고참들 눈에는 아주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내가 낮잠을 자다가 깨어 보면 입속에 소금, 커피, 먼지... 이런 것들이 잔뜩 들어 있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심지어 자는 나를 들어 옮겨 벙커 위, 변소 옆 등등... 엉뚱한 곳에 갖다 놓기도 했다. 특히 최고 고참 208기 백운식 수병이 제일 많이 나를 골렸다. C-레이션 소금을 까서 입속에 넣는 것 같이 골리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도 바로 백 수병이었다. 나중에 귀국하여 진해에서 근무할 때, 멀리 서울, 포항의 동기들과 통신이 연결되면 하는 말이 "야~! 너 월남에서 어떻게 잠을 잤길래 월남 6중대 출신들마다 226기 하면 너 잠자는 얘기를 하냐?" 하는 거였다. 아마도 우리 통신반 고참들이 귀국하여 내 잠에 대해 소문을 낸 모양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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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탕... 히힛~!... 2소대는 중대본부로부터 OP를 너머 남서쪽 멀리 위치해 있고 3소대는 북서쪽으로 둔덕 너머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대본부 쪽에서는 직접 볼 수가 없다.
언젠가 중대 아래 자큐마을 주민 측에서 진정이 들어왔다. 자기네 개가 우리 중대 철조망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총으로 쏘아잡아 안으로 들여갔다는 것이었다. 사실인 즉, 2소대에서 철조망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개를 C-레이션
고기로 철조망 안으로 유인해서 총으로 쏴 잡아 히힛~ 포식을 했는데 자기네 개가 잡혀가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중대장이 적당히 무마했다.^^
그 후로는 2소대와 3소대는 올가미를 만들어 히힛~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 자큐마을 개들의 씨를 말렸고, 증거가 없는 마을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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