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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ngest Day --[ 대전투 ]-- 1971년 5월 30일로 기억된다. 우리 6중대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월남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마리아성당이 있는데 바로 이곳을 월남 티우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해서 (방문 이유는 기억 안남) 사전 경계조치로 일주일 전에 월남군과 미군 장갑차부대가 우리중대 근처로 이동해 왔다.
월남군의 지휘본부는 우리 중대 방석 안에 설치되었다. 우리 중대에서도 성당행사에 참가할 행사병력 약 십여 명을 차출하여 놓았다. 나는 그 행사부대의 통신병으로 지정되었다. 행사병력들은 지시에 따라 모두들 위장복을 깨끗이 빨고
특별히 링도 만들었다. 링은 미제 철조망을 풀어서 잘 편 다음 M16 꼬질대에 감아 만들고, 쇠구슬은 클레모어 몸체를 분해하여 누런 베이클라이트판에 박힌 것을 떼어내어 사용한다. 이제 행사 참가 준비는 끝났다. 내일은 월남
대통령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겠구나....
왼쪽 사진은 6중대 1소대 외곽에서 동쪽 대대방향으로 찍은 사진, 복판에 솟은 것이 바로 마리아성당이고, 가까운 쪽이 자큐마을이다. 사진 우측 멀리 대대 방향으로 포가 떨어진 것 같은 연기가 보이는데 무슨 일일까??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다. 행사일 새벽, 어둠이 지나고 주변이 훤해졌을 때 중대 방석 안 81mm 박격포반 부근에 난데없는 포탄 한 발이 떨어졌다. 다행히 벙커 지붕위에 떨어져서 피해는 없었지만 발사지점 확인이 되지 않았다. OP 및 2, 3소대 초소에서는 중대 동북방향 조그만 강을 건너 근거리 300, 원거리 500미터 지점에 있는 "A마을"(이름이 기억 안남)이 발사지점 같다고 중대상황실로 보고해 왔으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대는 월남군이 이미 일주일 전부터 완전히 장악하고 오늘을 준비해 왔는데?? 중대상황실에서 작전하사, 작전병, 통신병이 어리둥절하고 하고 있는데 두 번째 포탄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발사지점은 A마을이라고 OP 와 소대초소에서 중대 상황실로 보고해 왔다. 확실했다. 이때부터 중대가 발칵 뒤집혔다. 중대장이 뛰어나왔다. 월남군, 미군, 우리 이렇게 세 나라의 합동작전인지라 상황파악이 쉽게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서도 행사부대는 소집되었다. 깨끗이 빨아 두었던 얼룩무늬 위장복에 찰찰찰~! 경쾌한 소리를 내는 링도 찼다. 중대본부앞에 집합하여 중대장에게 행사부대 출발신고를 마치고 조금 아래에 있는 헬기장 옆을 지날 때 갑자기 요란한 총성과 함께 총알이 피핑~! 하고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흩어져 주변 1소대 교통호로 뛰어 들었다. 벌써 여러 번 느끼는 거지만 왜 이럴 때는 내가 제일 느릴까? 남들은 빨리도 뛰고 숨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내가 내 스스로를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답답한 생각이 든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숨가쁜 위급한 상황에서 뛰거나 엎드려 포복할 때, 그 짧은 시간에 옛날 어릴 적에 겪었던 일들이 순간적으로 주마등같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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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문공연....
한국에서 온 위문공연단이 2대대에 온다고 했다. 공연 날 각 중대는 경계병력 만을 남기고 단독무장으로 행군하여 대대로 구경을 갔다. 그 당시 한국에서 유명한 연예인들이 많이 왔다. 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고참들 말이 내가 월남에 오기 바로 전에 대대에 위문공연단이 와서 공연 중 한창 신나는데 대대본부가 적의 공격을 받아 난리가 났었단다. 공연 중에 적의 포탄이 날아와 터지고 총알이 날아 왔으니 오죽했으랴... 특히 여자 연예인들이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불고 하는 통에 아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이런 날에는 그동안 무전기로만 대화를 주고받던 5, 7중대의 동기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런데 230기 신현기가 그날 공연했던 인기정상 가수 박재란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30년이 더 지난 얼마 전(2003년) 나한테 공개하는 것이 아닌가??? 신현기는 그때 앰프병이 친척이어서 그 덕에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때는 고참들의 눈이 무서워 감히 공개하지 못했단다.^^; 오른쪽 사진은 신현기의 사진을 빌려다가 신현기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내 사진을 복사해 넣었다가, 아무래도 너무 심한 것 같아 신현기도 반대쪽에 세워 놓은 변조된 사진이다...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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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 소 두마리, 적 2명 생포 ]-- 꿈같은 위문공연의 즐거움도 잠시, 또 작전에 나서야 했다. 그중 한 작전 때의 일이다. 작전 중 깊은 산중에서 적의 은신처(사진)를 발견했다. 정밀 수색을 했으나 적은 이미 도주한 후였다. 집 주위를 뒤졌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중대장은 숲속이 자꾸만 의심스러운지 중대본부 병력으로 하여금 숲속에 일제 사격을 하도록 지시했다. 우리들은 죽~ 횡대로 늘어서서 숲을 향하여 신나게 쏘아댔다. 그러자 숲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더니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모두들 바짝 긴장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숲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은 짐승들이었다~@.@~ 이때 뛰쳐나온 것들이 닭이었는지, 오리였는지, 아니면 개였는지 돼지였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우리들이 어이없어 하는 사이 튀어나온 짐승들은 근처 옆 숲으로 다시 숨어 버리고 말았다.
중대장은 전 중대에 경계강화와 함께 주위 숲의 수색을 지시했다. 얼마 후 날아온 보고는 적들은 간데없고 숲속에서 소 두 마리를 발견했다고 했다. 결국 소 두 마리만 영문도 모른체 체포되어 끌려나왔다. 중대장 이하 우리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이놈의 나라는 짐승들까지도 VC를 닮아서 숨소리도 안내고 숨어 있다고....^^ 소 두 마리의 체포는 대대로 보고 되었고 얼마 후 헬기를 보낼 테니 산 채로 실어 보내라는 지시가 와서 숲속에 숨어있던 소 두 마리는 헬기에 의해 후송되었다. 실전중 나도 모르게 찍힌 사진 4장 중의 두 장, 작전 중 베트콩의 은거지에서 잠시 휴식중... 집 앞에서 주저앉아 뭔가를 맛있게 먹고 있는 226기 김태진, 그 뒤 집안에 앉아 교신 중인 나, 더 안쪽에 윤승현 중대장이 보인다.. 이 소들은 여단으로 보내져 도축되어 한 마리는 운반 및 도축비 비용으로 상납되었고 또 한 마리는 대대로, 그중 일부는 우리 중대로 분배되어 작전을 끝내고 방석으로 돌아온 후 전 중대가 포식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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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 휴양소...
월남에서는 여단작전 같은 큰 작전을 치르고 나면 다낭 바닷가에 준비되어 있는 휴양소에서 2박3일 푹~ 쉴 수 있게 해 준다. 월남에 있는 동안에 나는 딱 한 번 휴양소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전쟁의 공포, 불침번에서 해방되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고 시원한 야자수 그늘에서 술한잔하며 얼마든지 쉴 수 있었다. 또, 도시에서 멀리떨어져 있는 우리같은 전투부대원들한테는 이때가 말로만 듣던 다낭 시내의 시장, 번화가, 유흥가, 환락가 등 어디든지 가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나는 하늘에 맹세코 다낭 시내에 나가 보지도 못했다. 다시 말하면 꽁까이 손목도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휴양소 안에서 그냥 튜브나 타고 먹고 마시며 놀아야 했다. 왜?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너무나 쫄병이었기 때문에.. ㅠ.ㅠ 그러나 난 너무나 많이 안다. 왜?? 주워 들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ㅋ ㅋ ㅋ ~! 왼쪽 사진은 다낭 휴양소에서 나, 병기병 김성호(?), 보급병 차정학(226기), 통신병 신현기(230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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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 낙오병 구출작전 ]-- 언젠가 중대 방석에서 서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험한 산악지역으로 작전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약 일주일 간의 작전이 모두 끝나고 헬기로 철수해 방석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잠시 후 중대본부로 다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2소대(?)에서 작전에 같이 나갔던 소대원 한 명이 보이지 않는데, 아무래도 조금 전 철수지점에서 헬기를 못 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중대가 발칵 뒤집혔다. 이런, 이런~~ 중대장은 끌끌 혀를 찼다. 모두들 방석 안을 모두 뒤지고 앵글리코맨에게 철수에 사용된 헬기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오리무중이었다. 중대장은 철수했던 지점으로 특공대를 보내기로 결심, 1개 소대 규모의 특공대를 급히 편성, 출발시켰다. 헬기로는 불과 몇분 거리였지만 걸어서는 몇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었다. 문제는 어둡기 전에 돌아와야 하는 것이었다. 특공대가 출발한 후 중대본부에는 특공대와 연락되는 무전기 주위에 여럿이 모여 시시각각 들어오는 특공대의 보고에 온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드디어 철수지점에 도착했다는 보고와 함께 곧 이어서 낙오병을 찾았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모두 야~!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방석에 도착하기 전에 어두워질 것이었다. 중대에서는 조명탄을 쏘아 올릴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특공대가 방석에 도착하기 전에 날은 어두워 졌다. 중대에서는 60mm, 81mm 박격포로 조명탄을 쉴 새 없이 쏘아 올려 특공대를 유도했고 마침내 특공대가 방석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낙오병은 신병이 아닌 고참이었다. 철수지점에서 헬기를 기다리던 중 잠시 근처 그늘진 곳에서 쉬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중대가 철수한 뒤였다고 했다. 그때부터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숲속에 숨어 오직 아군의 구조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특공대가 처음 그를 찾았을 때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고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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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맞은 군수(?).... 언젠가 새벽에 중대 아래 마을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는 보고가 상황실로 들어왔지만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얼마 있다 군수가 총상을 입었으니 메드백을 요청하라는 지시가 중대로 하달되었고 총상을 입었다는 사람이 들것에 실려 들어왔다. 들리는 말은, 잠을 자던 중 괴한으로부터 피격을 당했는데 다행이도 총알이 급소를 빗나가 일단 목숨은 건졌다고 했다. 가까이서 보니 모로 누워서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고 입 앞에는 핏물이 뒤섞인 토사물이 많이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총알이 광대뼈에서 반대쪽 뺨으로 관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살범이 깜깜한 밤에 잘못 겨눈 거겠지.. 군수는 얼마 후 날아온 메드백헬기로 후송되어 갔다.. 그 뒤 결과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부상 당한 사람이 군수인지 면장인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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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기 동기 김태진의 죽음.... 1971년 8월 4일, 그날은 중대 방석 내의 낡은 유선 정리와 3선철조망 밖에 묻혀 있는 미진탐지기의 센서(돼지발톱이라고 불렀다)의 점검 및 재매설을 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다. 팀을 둘로 나누어 나는 유선정리 작업조, 태진이는 돼지발톱 작업조에 배정되었고 오후에는 두 조가 서로 작업을 맞바꾸어 계속하기로 했다.
유선정리작업이란 방석 안에 땅에 파묻은 전화선과 10여개의 중대 외곽 중요 초소와 중대 상황실과의 비상신호선(통화 대신 램프를 점등하는 스위치로 비상을 알리는 장치 - 전화보다 빠르다.)까지도 고장 난 것을 고치는
일이었는데 전임자들이 남겨놓은 결선도가 없어 일일이 다시 그려가면서 구성을 파악, 이해를 한 다음 수리를 해야 하니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오전 내내 작업하여 겨우 구성을 이해할 정도였다. 이대로 돼지발톱 팀에게
넘겨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점심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고 오후에 작업팀을 맞바꾸는 것은 불가하니 그냥 오전에 하던 대로 계속하기로 했다. 오후 작업이 계속되었다. 작업 중 가끔 허리를 펴고 저쪽을 보면 3~40미터 떨어진 저쪽 비탈에 태진이 조가 열심히 파고 묻고 삽질하는 것이 보였다. "야~! 요령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해~!" "또록또록~!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열심히 작업을 서둘렀다. 어둡기 전에는 끝을 내야 했다. 그러던 중 오후 4시쯤 되었을까? 별안간 태진이 쪽에서,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순간 사고다~! 생각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높이 솟은 시커먼 연기 속에서 뭔가 큰 덩어리가 휙~ 날아 그 옆 비석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손에 든 것을 팽개치고 그쪽으로 달려 갔다. 방금 본 비석 쪽으로 정신없이 철조망을 넘어 가는데 통신반장 반덕주 하사가 나를 보더니 "태진아~! 태진아~!" 하며 울부짖었다. 아! 태진이가 당했구나! 이럴 수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친 듯이 1선, 2선, 3선철조망을 넘었다. 저만치 태진이가 비석 옆에 업드려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니 아! 그게 아니었다. 전신이 산산조각이 난 채로 엉켜 있었다.
저 위 철조망 안에서는 폭발음에 놀란 중대원들이 몰려와 우리가 하는 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OP 및 초소의 관측보고를 받고 중대장도 뛰어 나왔다. 어느 하사(민사하사였는지?)가 들것을 가지고 철조망을 넘어왔다. 시신을 후송할 때 늘 하듯이 들것 위에 판쵸우의의 절반을 편 다음 그 위에 태진이의 시신을 하나하나 옮겼다. 식지 않은 태진이의 체온과 냄새를 느끼며 정성껏 옮겼다. 손톱이 망가지도록 박박 긁어 담았다. 상당 부분이 모자랐다. 우리는 그 부근을 샅샅이 뒤졌으나 폭발시 공중분해 되어 사라진 일부분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판쵸의 나머지 반으로 시신을 덮고 그 하사와 들것을 들고 움직이려는 순간, 지뢰다~! 하는 외침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매설된 지뢰를 발견한 것이다. 모두들 그 일대를 살폈다. 여기도 지뢰다~! 여기 또 있다~! 그 주변에서 모두 3개(??)의 지뢰가 발견되었다. 매설 위치 표시가 전혀 없는 지뢰들.... 그것은 옛날 프랑스군이 주둔했을 때 매설해 놓은 지뢰였다. 그 지뢰에 태진이가 희생된 것이었다.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고 서 있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위험한 지뢰밭을 우리는 정신없이 뛰어 다녔던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려 태진이를 들고 3선, 2선, 1선 철조망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왔는지 하늘에는 건쉽이 주위를 돌고 있었고 헬기장에는 벌써 메드백 헬기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태진이를 메드백 헬기에 올려놓고 돌아서는 순간 그동안 참았던 온갖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라 나는 그냥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바로 1971년 8월 4일이었다. 태진이는 진해 통신교육대에서 행사부대에 뽑히지 않아 바로 실무부대로 배치 받아 갔었고 실무부대로 가자마자 바로 월남으로 오는 바람에 나보다도 2진(6주) 먼저 월남에 와서 2대대에서 근무 중 내가 6중대로 가자 나와 같이 있겠다고 6중대를 자원하여 쫒아 왔었다. 중대에서는 우리를 쌍둥이 같다고 놀려댈 정도로 가깝게 지냈었다. 태진이는 어머니가 독일에 간호원으로 가 계시다고 했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사연들로 인하여 태진이를 잃은 슬픔은 나에게는 누구보다도 컸다. 다음날 태진이의 유품들을 눈물을 흘리며 아주 정성드려 상자에 담아 여단으로 가는 헬기로 떠나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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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죽음 당할 뻔.... 전쟁터에서 통신은 철저한 보안 속에 이루어져야 함은 상식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대급에는 음어자재와 COI(통신운용규정) 두 가지의 비밀문건이 있었다. 이중 음어자재는 10일마다 새로운 것이 지급되고 먼저 사용 하던 것은 자체 소각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COI는 한 달에 한 번 교체되는데 쓰던 것은 반드시 반납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언젠지는 확실치 않지만 통신반장 반덕주 하사가 사용이 끝난 음어자재를 소각하다가 무심결에 COI까지 태워 버렸다. 혼자 고민하던 반장은 그 독한 월남 럼주를 마시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다가 결국에는 술에 취해 그만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상황실 근무자 제외 전원 빤쓰바람 통신제1벙커 앞으로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잽싸게 빤스바람으로 집합했다. 통신제1벙커는 통신반 모두가 식사를 하는 식탁이 있는 곳으로 벙커 뒤 절벽 위에는 60mm 박격포반이 있었고 앞에는 식탁, 그 아래는 낭떠러지 축대였다. 축대 한쪽에는 전에 내가 쓰레기를 태우다 총알을 맞은 쓰레기장이 있다. 벙커는 한쪽으로 쑥~ 들어가 있기 때문에 중대본부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반장은 이미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합한 우리를 보더니, '내가 태웠어~, 내가 태워 버렸어~' 하고 중얼대더니 벙커에 들어가서 마시다 만 술병을 가지고 나와 또 한모금 하는 거였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아주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반장은 술병으로 식탁을 탁~! 내려치며,
야, 윤종태 ! 네, 상병 윤종태 ! 난 어떡하냐 ? ??? 최철식 ! 네, 일병 최철식 ! 난 어떡하냐구? 잘 모르겠습니다 ! 뭐? 잘 몰라? 그럼 너, 신완식 ! 네, 일병 신완식 ! 너두 몰라 ? 네, 잘 모르겠습니다 !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술에 취한 반장한테 당하기 시작했다. 반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취해 가고 그럴수록 더 황당한 말을 해댔다. 다시 벙커에 들어가더니 이번엔 M16소총과 실탄이 가득 찬 탄창 한 개를 들고 나왔다. 우리는 더욱 불안에 떨었다. 반장은 비틀거리며 탄창을 M16에 철컥~! 집어넣었다. 반장은 노리쇠 손잡이를 잡고는, 너 ! 네, 상병 윤종태 ! 이게 뭐야 ? 노리쇠 손잡입니다 ! 너 ! 네, 일병 최철식 ! 이거 땡겼다 놓으면 어떻게 되냐 ? 실탄이 장전됩니다 ! 반장은 잡았던 손잡이를 쑥~ 당겼다 놓았다. "철컥~!" 실탄 한 발이 약실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반장은 술 한모금을 더 하더니 비틀거리며 노리쇠 손잡이를 또 당겼다가 놓았다. 약실에 들어 있던 실탄 한 발이 튀어 나왔다. 새로운 실탄이 약실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 M16으로 식탁을 탕 탕~! 내려쳤다. 그러더니 갑자기 M16을 허리총자세로 나를 겨누더니 급기야는 잠을쇠스위치를 푸는 것이 아닌가 ?? 너 ! 네, 일병 신완식~@.@~! 이거 땡기면 어떻게 되나 ? 격발됩니다~@.@~! 총구는 다시 옆으로 향했다. 너 ! 네, 일병 신현기 ! 격발되면 어떻게 되나 ? 죽습니다~@.@~! 다시 옆으로, 너 ! 네, 일병 x x x ! 난 어떡하냐 ?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반장이 왜 이러는지, 언제 끝이 날 건지, 차라리 반장 속이 풀릴 때까지 실컷 두둘겨 맞고 빨리 끝났으면 좋으련만... 위험한 집합이 계속 되었다. 술 취한 반장이 자물쇠 스위치를 연발로 제끼고 손가락을 방아틀뭉치에 넣었을 때는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아찔했다. 총구가 나를 향했을 때의 그 아찔함은 내 글 솜씨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저러다가 실수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 누군가는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총구 방향이 나를 지나 멀어졌을 때 반장을 덮쳐볼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빠를까? 아니면 반장이 더 빠를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때 벙커 위 절벽위에서 2소대 3분대장(문 하사였는지??)이 우연히 낭떠러지에 바짝 다가섰다가 아래에서 벌어지는 괴상한 집합을 보게 되었다. 통신반장이 통신병들을 모두 모아 놓고 총으로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계속 지켜보던 분대장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채고 저 아래로 105mm 포 진지를 돌아 우리가 괴상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곳으로 접근하여 동태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난 어떡하냐 ? 잘 모르겠습니다~@.@~! 분대장은 통신반장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면서 벙커 옆에 바짝 접근했다. 우리들은 분대장을 볼 수 있었지만 통신반장은 분대장을 볼 수 없는 위치였다. 통신반장이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길 위험이 있으므로 분대장은 기회만 노리고 있었고 우리들은 이 위기를 탈출할 한 가닥 희망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통신반장이 분대장 쪽과 정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린 것이다. 분대장이 잽싸게 다가가 먼저 M16부터 빼앗아 멀리 하고는 반항하는 통신반장을 힘 반, 말 반으로 어렵게 제압하는데 성공하였다. 상황이 끝난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맥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날 술이 깨고 이성을 되찾은 반장은 중대장에게 자진신고를 했고 중대장은 상급부대에 신고, 보안대가 급히 날아오고 비상이 걸렸다. 현지조사를 마친 보안대는 반장과 230기 신현기를 데리고 헬기로 떠났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음어자재와 COI가 헬기로 공수되어 왔다. 이 긴급교체는 청룡부대뿐만 아니라 전 주월한국군에게 적용되는 것이라 했다. 다음날 반장과 신현기가 돌아왔는데 말은 하지 않지만 무지 혼난 것 같았다. 그 착하고 순한 반장을 그렇게 만든 것은 오로지 술, 술~! 때문이었다. 얄미운~ 술... 그래도 좋은~ 술...~@.@~ 실탄이 장전된 총구가 나를 향하고 있을 때의 그 섬뜩함을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30년 후 인터넷 덕분에 알게 된 225기 최철식 수병의 말에 의하면 그때 내가 눈치를 보아 반장을 덮치겠다고 했는데 너무 위험해서 자기가 말렸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때 그런 생각을 한걸 보면 그때는 겁 없이 혈기 왕성했었나 보다. 모르긴 해도 그때 집합을 당했던 우리들 중 쫄병 한 둘은 빤쓰(요즘 발음으로는 팬티^^)에 쉬~~를 지렸으리라 ㅋㅋㅋ .... 여기에 225기 최철식 수병이 최근(2001-10-18) 나한테 보낸 이메일 중에 위의 사건에 관한 것이 있어 수정없이 그대로 옮겨본다. 그때의 아찔함이 잘 나타나 있다. 통신BUNKER에서 있었던 반외덕하사의 사건등은 너무나 SHOCKING한 사건이나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야외식당을 만들기위해 4POINT에 설치된ANGLE철주가 있었는데 그총구멍이 내앞으로 겨누어 오니까 그총구멍을 피하기위하여 의식적으로 철주뒤로 자세를 조금씩 움직이곤 하였다오.왜냐하면 총이발사되면 직접적으로 총알이 내앞으로는 오지않을까하는 본능적인 감각이였다오.지금생각하면 철주폭이 50MM도 되지않아.총이발사되면 피할수도 없는처지인데말이요.그당시에 내가 제일선임수병으로 알고있는데 모두꼼작없이 서있는순간에 신수병이 작은소리로 반하사가 술이 꽤취해있으니까 덮쳐서 M16총을 빼았으면 어떨까하고 묻길래 깜작 놀랐다오.자세을 가누기도 힘던상황인데 덮쳤다하면, 정말 큰사고가 나기십상이었던 순간이었소. 지금도,나말고 혹시 다른사람이 그자리에서,그러한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만일그렇게 행동했었더라면 어떻개 되었을까하고 이따금씩 생각이나오 아마 지금이렇게 옛날생각하며 신수병에게 E-MAIL을보낼 즐거운시간도 없었지않나 생각이더오. 그때 우리를 구해 줬던 분대장을 제대 후 한 번 본 적이 있다. 언제 어디선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마도 70년대 중반 월미도 동원훈련장이 아니었던가 싶다.. 또 엊그제(2001-11-16), 내 홈 게시판에 바로 이 반덕주 하사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여기 관련된 부분만 그대로 옮긴다. 하사관120기 김상규 입니다.월남전 수기중 반가운 이름 반덕주님.그분은 78년도 저와 같은 32대대에 근무를하고(반덕주님은본부중대,저는 화기중대) 전역도 78년 11월 말 같은날 저와 함께하였습니다.선배님 기억대로 그분은 정말로 순진하고,착하고,마음씨가 좋은 분이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반덕주님(32대대 통신선임하사로 중사전역)의 소식은 아쉽게도 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병대 출신들은 언젠가는 꼭 한번씩은 만난다 라는 말이 있지않습니까? 언젠가는 그리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는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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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우기철(5월~10월)이 되자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왔다. 며칠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지기도 했다. 이때 매복조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른 땅보다 젖은 땅을 파기가 수월한 것을 빼고는 모두가 최악의 조건이다. 달이 가려 너무 어두워 눈을 뜨나 감으나 그게 그거다.^^ 판쵸우의에 떨어지는 요란한 빗소리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참호에 물이 차서 들어가 있기도 괴롭다. 에라~ 죽기를 각오하고 참호 밖 바닥에 그냥 올라 앉는다. 또, 춥기는 왜 그렇게 추운지....
중대 주변 마을에는 우기철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대비하여 집집마다 조그만 배를 가지고 있는데 비가 오랫동안 계속해서 내려 집에 물이 차면 배에 먹을 것을 싣고 가까운 높은 곳으로 피신을 간다고 했다. 비가 계속해서 오고 물이 점점 불어나서 대대와 5중대 방석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자 그 일부 병력이 우리 6중대로 피난을 온 적이 있었다. 물이 다시 빠져 돌아갈 때까지 온 중대가 시골 장터같이 아주 시끌벅적 했다. 덕분에^^ 그동안 무전기 교신으로만 알고 지내던 동기들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이때 대대소속인 어떤 하사가 날 찾아와 내가 어렵게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산 미니스테레오 앰프/리시버 세트를 빌려 달라고 했다. 난 처음엔 단호히 거절했지만 결국 공갈협박에 어쩔 수 없이 빌려 주었는데, 다음날 그 하사는 그걸 노름으로 날렸다고 하면서 귀국하기 전에 꼭 갚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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