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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우 재회.... |
재회 [ 2 ] --230기 신현기-- 2000년 11월 24일 금요일 아침,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니 뜻밖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그 내용은, ![]() -------------------------------------------------------- 보낸사람: 신일철 제목: 월남에 함께 계셨던 '신현기'씨의 아들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아버님을 위해 The Ventures 노래를 찾다가 우연하게 웹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연락 부탁하셔서 이렇게 메일 드립니다. 011-9920-5xxx 서울 목동에 거주하고 계시며, 김포에서 사업을 하십니다. 아버님이 무척 연락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메일을 읽어나가는 순간 머리가 띠융~! 했다. 이게 꿈인가 생신가??? 신현기라니~!! 아~! 이럴 수가.. 신현기라면 30년 전 월남에서 같은 벙커에서 지내며 총알이 흩어지는 틈을 같이 뛰고 구르던 230기 신현기가 아닌가??!! 제대한 직후 한번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랬는데 30년 만에 기막힌 우연으로, 그것도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The Ventures 덕택에 그 신현기의 아들이 인터넷에서 나를 발견한 것이다. 가슴이 쿵쾅쿵쾅했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전화를 했지만 접속이 되질 않았다. 다음날에야 겨우 연결된 전화,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바로 30년 전 월남에서 듣던 그 목소리였다. 우리는 다음날 일요일 낮 12시에 동작동 국립묘지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시간 가는 것이 왜 이렇게 더딘지.. 태진이한테 줄 빨간 뚜껑 두꺼비도 준비했다.^^ 일요일 낮 12시, 궂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막 멎었을 때쯤, 약속장소인 국립묘지 정문 앞에서 우리는 만났다. 마치 625 남북 이산가족 상봉처럼 우리는 만났다. 멀리서도 서로가 알아 보고 손을 흔들며 조금이라도 빨리 보려고 우리는 서로 뛰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우리가 마치 며칠 전에 보고 오늘 또 만나는 것 같은 전혀 낯설지 않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았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만져도 보고 하였다. 태진이의 묘에 가서 준비해간 진로 소주를 따라 주며 옛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는 그날 거하게 취하도록 마셨고, 곧 다시 만나기로 하고 저녁 늦게 헤어졌다. 꿈만 같은 하루였다. 정말이지 인터넷 화이팅, 홈페이지 화이팅, 그리고 벤쳐스 화이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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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 3 ] --226기 남정수, 강재동-- 2001년 7월 8일 뜻밖의 반가운 글이 내 홈페이지의 방명록에 올라왔다. 그 내용은, ![]() ------------------------------------------------------------- Name : 남정수 Email : kiki3411@yahoo.net 안녕하세요??저는 부산에 살고 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저의 아버지게서도 해병대생활을 하셨고. 아저씨와 같은 동기이신데.. 고된 훈련과 목숨을 건 전쟁에 참가한 동기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사이트를 알게 되어 아버님과 둘러보니.. 아저씨와 같은 226기 해병대 동기생이고, 저의 아버지께서도 통신 유선병으로 월남 2대대에서 활동하시고, 청룡부대 귀국1진 으로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이 사이트를 보시고 무척이나 기뻐하셨습니다. 이름은 생소하시나, 만나뵈면 기억을 되살릴것 같다고 하십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서울 해병226기 동기생들과 모임을 하시는데. 1년에 2번정도 모임에 참가하십니다. 먼곳에 사시는데도 참가하시는걸 보고 전우애가 이런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사이트에 내용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아버님께 자주 듣던 군대 이야기와 월남전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하니..너무나 생생하게와닿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아저씨와 연락을 하고싶어 하십니다. 바쁘시지만 연락한번 해주십시오.. (051)441-0xxx -------------------------------------------------------------- 나는 즉시 부산으로 전화를 했다. "남정수 씨의 아버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아주머니가 "뭐라카노?" 하면서 누군가한테 전화기를 넘겨준 듯 "여보세요~" 하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또 "남정수 씨의 아버님을 찾습니다~" 했다. 그런데 이 남자 역시 "뭐라카노?" 하는 것이 아닌가.... 꼭 장난전화 취급하듯이 끊어 버릴 것같은 느낌이라 나는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여보세요, 여기는 서울인데요, 이메일을 받고 전화를 하는 겁니다. 남정수 씨 아버님 부탁합니다. 해병대 226깁니다~!" 그랬더니, "내가 남정수요, 혹시 신완식 씨 아닙니까?" 하길래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내가 남정순데 아버지는 왜 찾나?" 하는 것이었다. 결론은 남정수의 딸이 나한테 이메일을 쓰면서 아빠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혼동이 있었던 것이다. 한참 웃었다. 남정수는 부산에서 부인과 함께 식당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서울 226기 동기회의 모임에 일 년에 두 번 참석한다고 했다. 대단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이번 7월 서울모임 때 만나기로 약속했다. 2001년 7월 26일 동기회 모임에 나갔다. 장소는 식당이었는데 초로의 남자들이 20명 가까이 모여있었다. 모두들 모르는 얼굴들이지만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226기 모임이라서 모임날짜는 매월 26일이란다.^^ 남정수가 부산에서 올라와 있었는데 어렴풋이 낯이 익었다. 그러나 그것은 월남에서 본 기억 때문이 아니라 월남으로 가기 전 4주 간의 통신교육대에서의 기억이었다. 그날 모인 동기들 중 놀랍게도 월남 2대대 6중대 2소대 에서 근무하다 같이 철수한 강재동(사진참조)을 만날 수 있었다. 강재동은 내가 낯이 익다고 했다. 또 그날 참석한 박제일은 월남에서 한쪽 팔을 잃어 의수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2차, 3차 밤늦도록 마셨고 나는 술김에 남정수와 함께 이영화의 집으로 가서 한잔 더 했다. 그러다가 필름이 끊겼는데 눈을 떴을 때는 우리집 안방이었다.~@.@~ ![]() |
재회 [ 5 ]
--219기 윤종태--
2002년 9월 19일, 다음날이 추석 연휴 첫날이라 회사에서 오후 일찍 끝내 주었다. 오후 일지감치 집에 들어와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 이런, 이럴수가?? 그렇게 찾아 헤맸던 219기 윤종태 수병의 글이 내 홈페이지의 방명록에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
이게 꿈인가 생신가 했다.... 그러나 방명록의 글에는 전화번호가 없었다. 단지 이메일 주소만 있었다. 이럴 때 전화번호라도 적어 놓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도 급한 마음에 내 전화번호를 넣어 이메일을 얼른 써서 보내고, 2년 전에 만난 230기 신현기한테 전화를 했으나 그날따라 받지 않았다. 아래는 이때 윤 수병한테 내가 보낸 이메일의 내용이다. =================================== 여러 가지 할 말 일단 때려 치우고, 이게 누궁교? 이게 꿈잉교, 생신교? 정말 반갑습니다~! 형수님도 안녕하신지요? 지금까지 울산에 계셨다니 부자 되셨겠네요^^^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선배님 찾으러 혹시나 하고 인터넷을 얼마나 헤매고 다니는 줄 아십니까? 30년 전에 부산 연산동 돌아다닌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래서 사람이 거짓말이나 뻥을 치면 안되는 겁니다. 제가 제 홈에 해병대 추억록인더 잊어버리기 전에... 의 내용에 거짓이 있다면 이렇게 단번에 들통나지 않겠습니까? 이젠 할아버지 다 되셨겠네요,,, 전 내일 월남 전우 230기 신현기와 226기 양선우 하고 동작동 국립묘지 김태진이한테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제 동기 양선우는 지난 9월 7일, 30년 만에 만난 월남 전우입니다. 태진이가 죽은 후에 그 대타로 왔으니 윤 수병님은 모르실 겁니다. 오늘따라 신현기가 전화를 안 받는군요. 그건 그렇고 이메일 언제 줄겁니까?? 얼른 목소리라도 듣게 전화번호 주이소~! 아니면 전화를 하든지요~~!! 제 것은, 집: (02)474-**** 회사: (02)949-**** 핸드폰: 018-225-**** 빨리요~!!!! 필승~! 신완식 드림 ======================================== ![]() ![]() 신현기한테는 연락이 안되고, 이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안절부절하면서 윤 수병한테서 연락이 오기만 기다렸다. 다음날 드디어 윤 수병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윤 수병은 지금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중장비... 뭐...라고 했는데 잘 모르겠고~@.@~. 그 뒤로 계속해서 이메일과 전화로 서로의 만남을 기뻐하고 있다. 하루빨리 만나보고 싶지만.... 서울과 울산이니 쉽지는 않을 듯하다.... 오른쪽 사진은 최근(2002년 12월 29일)에 윤 수병이 이메일로 보내준 월남 근무 때의 사진으로 맨 왼쪽의 검정옷이 윤 수병이다. 윤 수병을 보고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신현기와 나는 윤 수병을 보러 울산에 가기로 하고 하루 날을 잡아 고속버스표를 예매했다. 며칠 전부터 윤 수병에게 연락을 하고 한 끝에 드디어 2003-03-01 07:00 우리는 울산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낮 12:00 울산 도착예정이 대구 근처에서 정체되는 바람에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울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윤 수병이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빗속의 해후..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때의 감정을 글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윤 수병은 살이 조금 찐 것을 빼고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윤 수병은 터미널에서 멀지않은 곳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파트에서는 그 옛날 내가 제대하기 전에 부산에 놀러갔을 때 여러 번 보았던 윤 수병의 부인(형수님이라 불렀다)이 우리를 반겼다. 형수님도 옛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형수님의 정성이 잔뜩 담긴 진수성찬을 거하게 먹고 마시며..~@.@~..ㅎㅎ 그 옛날 월남전 이야기, 부산 연산동을 뒤져 윤 수병을 찾아냈던 이야기..등등..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월남 6중대시절 작전 중 임종린 중대장이 크게 다쳤을 때 윤 수병도 뭔가에 무릎을 맞았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30년이 더 지난 얼마 전에 점점 많이 부어올라 뒤늦게 수술을 받았다는 흉터도 보았다. X-Ray사진에 작은 흰점 3개가 보여 수술로 제거했는데 그것은 잘게 부숴진 돌가루였다고 했다. 그때 맞은 것이 좁쌀 만 한 모래알이 아니라 굵직한 돌이었다면 윤 수병 다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시간은 빨리도 지나 어느새 5시가 가까워 왔다. 서울로 돌아가는 고속버스를 5시로 예매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윤 수병은 아들만 둘인데 둘째가 해병 820기라고 했다. 이 둘째가 터미널까지 우리를 차로 태워 주었다. 터미널에서 우리는 오는 현충일에 서울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 |
재회 [ 6 ] --6중대 중대장 임종린 (먼 훗날 1992년 제20대 해병대사령관 역임)-- 2003년 2월 10일 뜻밖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 내용은, 보낸사람 임철택 <clim@bh.knu.ac.kr> 2003년 2월 10일 월요일 오후 3:30 제목 안녕하세요? 신완식님의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드립니다 신완식님 안녕하세요? 님의 홈페이지를 보고 임종린(저의 아버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꼭 연락을 바란다고 전해드리라고 해서 메일을 보냅니다. 부탁합니다. 아버지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는 011-722-xxxx, limrokmc@hanmail.net 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경북대 임철택 바로 월남 2대대 6중대 중대장의 아들의 이메일이 아닌가?? 곧이어 내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도 같은 글이 올라왔다.
임종린 중대장은 내가 1970년 파월되어 청룡 제2대대 6중대로 배치받아 갔을 때 6중대 중대장이었다. 작전 중 동행했던 월남인 안이 옆에서 부비트랩을 밟아 발목을 잃을 때 임종린 중대장은 왼쪽팔과 왼쪽 다리를 다치고도 후송을 마다하고 작전을 끝까지 지휘해서 내 기억에 생생한 바로 그 중대장이다. 나는 즉시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다. 33년이 지났는데도 낯익은 목소리였다. 제20대 해병대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하신 후 약 5년간 대학교에서 사회학 강의도 하셨고, 젊었을 때부터 시 짓기를 즐기셨는데 2000년에는 아예 문단에 등단하셔서 시와 소설로 문학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그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계셨다. 그날 저녁 내가 아는 모든 6중대 전우들한테 이메일을 띄우고, 게시판에 답글을 올렸다. ![]() |
아마도 이제는 더 이상의 월남전우를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23-08-30 |
보고 싶은 전우들.... 208기 백운식... ![]() 서울 본토박이, 내가 월남 6중대로 배치받아 갔을 때 중대 통신반 병 중에서 두 번째 고참이었다. 항상 일가친척 없는 서울 양동의 양아치라고 큰소리를 쳤다. 특별한 기억은 월남에서 언젠가 대통령 선거 부재자 투표를 했는데 투표가 끝나고 얼마 후에 중대본부로 불려갔다가 돌아오더니 코에서 뜨거운 열기를 코뿔소처럼 씩씩~ 내 뿜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때 박정희가 아닌 곳에 찍은 것이 분명했다. 그 시절은 그런 때(?)였다. 나는 그런 고참을 보며 와~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10기 백재만.... 208기 백 수병과 단짝으로 아주 유머가 많은 고참이었다. '71년 5월 말의 대 전투 때 그 난리치던 상황에서도 푼돈 모아 산 카세트녹음기로 그날의 생생한 실제 교전상황의 소리를 녹음했었다. 그때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러 효과음까지 더해서 녹음했다. 그 테이프 지금도 가지고 있을까?? 언젠가 통신제1벙커옆에서 식사 준비 중, 땔감으로 모아둔 105mm 장약 더미에 불이 붙은 적이 있었는데 햇빛을 가리기 위해 쳐놓은 후라이를 태우고 불길이 높이 솟아올라 모두가 놀라서 우왕좌왕하는 중에 바로 이 백재만 수병이 155mm포통의 물을 끼얹어 가볍게 끈 적이 있었다. 보기와 달리(?) 상당히 침착한 고참이었다. 225기 박삼례.... 월남에서 2대대 6중대에 나와 같이 배치받았던 나보다 1기 선임이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아주 착한 사람이었다. 고향 ㅂㅇ친구인 1소대장한테 엄청나게 당했던 장본인이었다. 제대 후 그 악독한 친구에게 복수는 잘 했을까??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박삼례 수병의 사진은 나한테 하나도 없다.... 왤까?? ![]() |
후기.... ![]() 여기까지 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1998년 12월 22일, 인터넷에 올린 이 홈페이지 덕분에 저는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해병대 226기 동기모임과 연결이 되었고, 또 월남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6중대 전우들을 만난 이래로 지금까지 만나오고 있습니다. 또, 제 홈페이지 덕분에 벤쳐스 악단의 연주곡을 좋아하시는 여러분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인해서 제가 그토록 꿈꿔왔던 직장인 취미밴드인 The Mitures 밴드를 결성하여 10년이 넘도록 많은 무대에 올라 벤쳐스 악단의 연주곡을 직접 연주하는 꿈같은 경험도 하였습니다.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운 홈페이지입니다~~ 50여 년 전의 저의 진귀한 해병대 경험들을 충분한 자료도 없이 주로 기억에 의존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혹 기억이 되살아나거나, 새로운 자료가 입수되면 수정 보완하겠습니다. 2003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펴낸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3권 청룡부대 편에 제 글 중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편찬위원(최용호)이 제 글에는 해병대 뻥(?)이 없이 진솔하고, 또 국방부의 작전기록과도 일치해서 채택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이만 물러갑니다. 필!승!! 2024. 11. 04 해병 226기 신완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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